⚓ 해운대의 끝, 그물 냄새와 소주 한 잔이 기다리는 포구
해운대해수욕장을 따라 동쪽으로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모래사장이 끝나고 작은 포구가 나타난다. 미포항이다. 관광지도에는 분명 적혀 있지만, 처음 이곳에 발을 들이는 사람들은 대개 잠시 멈추게 된다. 방금 전까지 걷던 해수욕장의 들뜬 공기와는 전혀 다른 냄새가 코끝에 닿기 때문이다. 바닷물과 기름, 생선 비늘과 젖은 밧줄이 뒤섞인 그 냄새는 결코 세련되지 않지만, 어쩐지 오래 맡고 싶어지는 종류의 것이다. 이곳은 꾸며지지 않은 채로 살아 있다. 당신이 미포항에 처음 도착하는 그 순간,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이른 아침, 어선이 돌아오는 시간의 선착장

이른 아침의 미포항은 조용하지 않다. 해가 막 수평선 위로 얼굴을 내밀 무렵, 작은 어선들이 하나둘 선착장으로 돌아오기 시작하고, 갑판 위에는 밤새 거둬들인 그물과 물고기들이 가득 쌓여 있다. 엔진 소리가 포구의 수면을 가르고, 배가 선착장에 닿는 순간 밧줄이 공중을 날아가 기둥에 감긴다. 그 소리, 그 동작 하나하나가 수십 년간 반복되어 온 것처럼 거침없이 능숙하다. 당신이 이 시간에 이곳에 있다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서두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모든 것이 빠르게 이루어지는 그 이상한 리듬에 눈을 뗄 수가 없어서.
어부들은 그물을 내리고, 어판장 앞에는 이미 해산물을 고르러 나온 사람들이 모여든다. 아주머니들이 고무 대야 앞에 쪼그려 앉아 문어 다리를 집어 들고 흥정을 시작하고, 그 옆에서는 누군가 갓 잡아 온 생선을 신문지에 싸 비닐봉지에 담는다. 이 장면들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미포항이 이 자리에 있어 온 것만큼이나 오래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운대가 고층 호텔과 유리 건물로 가득 채워지는 동안에도, 이 작은 포구의 아침만큼은 그대로였을 것이다.
햇볕에 펼쳐 말리는 그물이 선착장 한편을 채우고 있다. 연두색과 파란색이 섞인 그물이 바람에 살짝 부풀었다가 가라앉는 모습은, 이상하게도 빨래가 마르는 오후의 골목을 닮아 있다. 누군가의 일상이 이렇게 공기 중에 널려 있는 장소. 당신은 그 앞을 지나가다가 문득 사진을 찍고 싶어질 것이고, 동시에 카메라를 내리고 그냥 눈에 담고 싶어질 것이다. 어떤 풍경은 렌즈보다 눈이 더 잘 기억한다.
회 한 접시와 소주 한 잔, 바다를 바라보며 앉는 일

미포항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포구를 바라보는 작은 식당이나 포장마차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방금 잡아 온 물고기로 만든 회 한 접시와 소주 한 잔을 앞에 두는 일. 영화 '해운대'에서 남녀 주인공이 식당과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배경으로 이 포구가 등장했던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장소에는 그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깃들 수 있는 분위기가 있다. 거창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고, 그러나 오래 앉아 있고 싶은 그 특유의 친근함.
회를 앞에 두고 젓가락을 집는 순간, 바람이 한 번 지나간다. 바다 냄새를 잔뜩 머금은 그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뜨리고, 잔 안의 소주 수면을 살짝 흔들고 지나간다. 테이블 위에 놓인 초장 그릇, 깻잎 한 장, 쌈장을 담은 작은 종지. 이런 것들이 이상하게 마음을 놓이게 한다. 당신이 누구와 함께 앉아 있든, 아니면 혼자 앉아 있든, 이 테이블 앞에서는 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싶거나 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미포항 인근에는 최근 베이커리 카페도 생겨났다.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여는 카페에서 갓 구운 빵을 사 들고 포구를 걷는 사람들, 항구의 비릿하고 짭조름한 공기 속에서 버터 냄새를 풍기며 걷는 그 묘한 조합이 지금의 미포항이 가진 얼굴이기도 하다. 어부의 마을과 여행자의 마을이 이 작은 포구 안에서 겹쳐 있고, 그 두 가지가 충돌하지 않고 나란히 공존하는 것이 미포항의 가장 흥미로운 점이다.
낮과 밤 사이, 유람선이 떠나는 선착장

미포항에는 유람선 선착장이 있다. 이곳에서 배를 타면 동백섬을 돌아 광안대교를 지나 이기대와 오륙도까지 이어지는 해운대 바다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낮에 타는 유람선과 밤에 타는 유람선은 같은 항로를 달리지만 전혀 다른 여행이 된다. 낮의 배 위에서는 시원한 바닷바람이 귀 옆을 스치고, 수면 위로 반짝이는 햇빛이 눈을 가늘게 만든다. 갈매기가 배를 따라오고, 저 멀리 해운대 해수욕장의 백사장이 하얗게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해가 지고 난 뒤의 유람선은 또 다른 종류의 감동을 준다.
밤의 미포항에서 유람선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낮과는 조금 다른 표정을 하고 있다. 낮의 방문객들이 가볍고 활기찬 분위기라면, 밤을 기다려 이곳에 온 사람들은 무언가를 기대하며 조용히 설레어 있다. 광안대교의 조명이 물 위에 길게 반사되고, 해운대 고층 빌딩들의 불빛이 바다에 녹아드는 밤의 풍경은 낮과는 전혀 다른 부산을 보여 준다. 미포항 위쪽으로 자리한 시그니엘이나 LCT 레지던스의 불 켜진 창문들이 저 높은 곳에서 포구를 내려다보고 있고, 그 창문 너머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누군가가 같은 바다를 다른 각도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 포구의 빛깔이 달라지는 시간이 있다. 황금빛 햇살이 수면을 비스듬히 가로지르고, 어선의 낡은 선체가 그 빛을 받아 따뜻하게 물드는 순간. 미포항에서의 일몰은 해운대 해수욕장의 그것보다 덜 알려져 있지만, 포구의 일상적인 풍경과 겹쳐지는 그 빛은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당신이 이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면, 조금 일찍 자리를 잡고 앉아 기다릴 필요가 있다.
철길 위에서, 달맞이고개를 등지고 바다를 보는 일
미포항 바로 위쪽으로는 동해남부선 폐철길이 지나간다. 한때 기차가 달리던 이 철길은 지금은 걷는 사람들의 길이 되었고,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철길을 따라 걷는 일은 평소라면 할 수 없는 경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발을 올려놓는 그 순간은 언제나 조금 두근거린다. 침목 사이 간격에 맞춰 걸음을 조절하고, 레일 위에 발을 올리고 균형을 잡으며 걷는 그 감각이 어린 시절 어딘가의 기억을 건드린다.
철길 위에 서면 한쪽으로는 탁 트인 바다가 펼쳐지고, 다른 한쪽으로는 달맞이고개의 울창한 나무들이 이어진다. 달맞이길을 따라 들어선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나무 사이로 보이고, 그 아래 미포항의 작은 포구가 내려다보인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미포항은 또 다르다. 선착장의 배들이 장난감처럼 작아 보이고, 그물이 널린 부두가 조각보처럼 펼쳐져 있다. 당신이 철길 위에 서서 이 모든 것을 한눈에 담을 때, 이 장소가 얼마나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곳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계절에 따라 철길의 인상은 달라진다. 봄에는 철길 주변으로 연초록 풀이 돋아나고, 여름에는 강한 햇빛이 레일을 은빛으로 달구어 멀리서 보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가을에는 달맞이고개의 나뭇잎이 물들어 철길 위로 낙엽이 쌓이고, 겨울에는 회색빛 하늘 아래 파도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어느 계절에 와도, 이 철길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경험은 미포항이 주는 가장 조용하고 긴 여운을 남기는 순간 중 하나다. 당신이 혼자 이곳에 왔다면 그 고요함이 위로가 될 것이고, 누군가와 함께라면 말없이 나란히 걷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