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떠나·← 오늘속초 돌아가기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 · 동명동성당 · 관광지

⛪ 언덕 위 성당은 바다를 향해 오래 기도하고 있었다

동명동성당

속초 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이 조용히 위를 향하기 시작한다. 발밑으로 아스팔트가 끝나고 오래된 돌계단이 나타나는 그 경계쯤에서,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한 박자 늦추게 된다. 바다 냄새가 조금 더 짙어지고, 바람이 조금 더 낮게 불어오는 그 자리에서, 언덕 꼭대기에 자리한 동명동 성당의 하얀 외벽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다. 속초의 집들이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고 앉아 있는 동명동 골목 안에서, 이 성당은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지켜온 사람처럼 조용하고 단단하게 서 있다. 그 풍경을 처음 마주하는 순간, 이상하게도 서두르고 싶지 않아진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바람이 먼저 당신 곁에 당도한다

동명동 성당으로 오르는 계단은 그리 가파르지 않다. 하지만 한 칸 한 칸 오를 때마다 속초의 풍경이 조금씩 열리는 방식이 있어서, 사람들은 대부분 중간쯤에서 한 번은 멈춰 서게 된다. 그 순간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기와지붕과 슬레이트 지붕이 뒤섞인 동명동의 낮은 골목들, 그 너머로 아득하게 펼쳐지는 속초 앞바다다. 바다는 계단 위에서 내려다볼 때 가장 넓어 보인다. 수평선이 눈높이와 맞닿을 것처럼 가까워지고, 동명항 포구의 작은 배들이 점처럼 흩어져 있는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고요하게 펼쳐진다.

계단 난간을 손으로 짚으면 차갑고 거칠한 쇠의 감촉이 손바닥에 남는다. 속초의 바람은 내륙과 다르다. 짭조름한 습기를 품고 있고, 살갗에 닿을 때 약간 무겁게 느껴진다. 그 무게감이 오히려 기분 좋다. 등을 가볍게 밀어주는 것도 같고, 잠시 여기 머물러도 좋다고 다독이는 것도 같다. 성당을 향해 오르는 이 짧은 계단이 단순한 이동 경로가 아니라 일종의 전이 구간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마 그 바람 때문이다. 속초의 일상에서 이 언덕 위의 시간으로 조용히 건너가는 통로.

성당 앞마당에 발을 내딛으면 공기가 달라진다. 계단 아래의 번잡함이 조금 멀어지고, 바람 소리와 이따금 들려오는 항구의 낮은 소음만이 남는다. 마당은 넓지 않지만 탁 트여 있어서, 그 작은 공간 안에 하늘과 바다와 성당이 한꺼번에 담긴다. 사람들이 이곳을 해맞이 장소로 찾는 이유를 이 마당에 서면 금방 이해하게 된다. 동쪽을 향해 열린 전망, 그리고 그 방향으로 기도하듯 서 있는 성당의 정면이, 해가 뜨는 시간에 얼마나 다른 표정을 지을지 어렵지 않게 상상된다.

한국전쟁 중에 지어진 성당이 오늘도 문을 열고 있다는 것

동명동 성당의 전신인 속초성당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에 지어졌다. 전쟁 중에 세워진 유일한 성당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 건물을 다시 바라보면, 하얀 외벽의 질감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총성과 피난 행렬이 뒤섞이던 시절에도 누군가는 이곳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렸다. 그 행위 자체가 이미 기도였을 것이다. 무너지는 것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짓는다는 것,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마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이 성당이 피난민들에게 옥수수가루와 우유, 의약품을 나누어주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미사 때마다 생필품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믿음과는 무관하게 많은 사람들이 성당으로 모여들었고 그 가운데 신도가 된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떠올리면 성당이라는 공간이 가진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 잠시 생각하게 된다. 구원이라는 말이 얼마나 여러 층위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가장 절박한 순간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가 어떤 곳인지를.

2023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성당은, 이제 역사적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장소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공식적인 이름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성당이 지금도 살아 있는 신앙 공동체의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오래된 건축물이 박물관처럼 유리 뒤에 갇히지 않고 오늘도 누군가의 기도와 함께 숨 쉬고 있다는 것. 당신이 이 마당에 서 있을 때, 그 시간들이 층층이 쌓인 공기를 함께 마시게 되는 것이다.

성당 건물 자체는 단순하고 절제된 형태를 하고 있다. 화려하게 치장된 대도시의 성당들과는 다른 결이다. 속초라는 도시가 가진 소박하고 실용적인 기질이 이 건물에도 배어 있는 것 같다. 종탑의 선이 깔끔하고, 외벽의 흰색은 바다의 빛을 받아 시간마다 다른 색으로 변한다. 오전의 선명한 흰빛이 오후가 되면 부드러운 크림색으로 바뀌고, 해 질 녘에는 주황빛을 살짝 머금기도 한다. 그 변화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곳에 오래 머물 이유가 생긴다.

빛이 바뀌는 시간, 성당도 다른 얼굴을 꺼낸다

동명동 성당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출 시간대의 뷰가 특히 아름답다는 이야기가 자주 오간다. 실제로 성당 앞마당에서 바라보는 동쪽 방향은 속초 앞바다가 정면으로 열려 있어서, 수평선에서 해가 떠오르는 순간 성당의 흰 벽과 하늘과 바다가 한꺼번에 물드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그 시간에 이곳에 서 있으면, 성당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빛을 받아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해맞이 장소로 알려진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

이른 아침의 동명동은 고요하다. 항구 쪽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엔진 소리와 갈매기 울음이 간간이 섞이지만, 그 소리들은 정적을 깨지 않고 오히려 정적의 일부가 된다. 성당 앞마당에 서면 발아래로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은 골목들이 보이고, 지붕들 사이로 새벽의 차가운 안개가 얇게 깔려 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처럼 가까운 바다는 그 시간에 가장 짙은 색을 하고 있다. 납빛에 가까운 어두운 청색이 해가 뜨면서 서서히 코발트로, 그리고 투명한 에메랄드로 변해가는 과정을 이 마당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수 있다.

낮 시간의 성당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햇빛이 강해지면 흰 벽이 눈부시게 빛나고, 그 빛이 마당의 돌바닥에 반사되어 발밑까지 환해진다. 성당 옆 언덕에서는 속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낮의 선명한 빛 아래서 보는 도시의 풍경은 아침과는 전혀 다른 생동감을 가진다. 속초항의 붉은 등대가 멀리 보이고, 그 옆으로 영금정 쪽의 해안선이 이어진다. 이 언덕 하나에서 속초의 지형 전체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마치 이 도시의 비밀 지도를 손에 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 늦은 시간에는 성당의 서쪽 벽면에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고, 마당에는 낮과는 다른 서늘함이 깔린다. 그 시간에 성당 앞 벤치에 앉아 있으면, 하루 중 어느 때보다 조용한 생각들이 찾아온다. 서두를 이유가 없는 생각들, 결론을 내지 않아도 되는 감정들이. 동명항 포구에서 성당 쪽을 올려다보면 하트 모양의 조형물 너머로 성당이 보인다고 어느 방문객이 기록을 남겼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성당과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그 두 시선이 이 장소에서 교차한다.

5월의 속초에서, 혹은 당신이 오는 그 계절에

이 성당은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가진다. 5월의 동명동은 아마 가장 온화한 시절일 것이다. 봄이 완전히 자리를 잡고 여름이 오기 직전의 그 짧은 시간, 속초의 공기는 짭조름하면서도 꽃향기가 섞여 있다. 성당 주변의 나무들이 연두색 잎을 달고 있는 계절에 오르는 계단은, 겨울의 그것보다 훨씬 가벼운 발걸음을 허락한다. 마당에 서면 바다가 봄빛으로 반짝이고, 멀리 설악산의 능선이 아직 잔설을 품은 채 흐릿하게 보이기도 한다.

혼자 오는 것도, 누군가와 함께 오는 것도 이곳에서는 모두 자연스럽다. 혼자라면 계단 중간에서 멈춰 서서 아무 말 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함께라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며 저기 저게 뭐냐고 묻는 소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어느 블로거는 이곳을 '발바닥 신자의 조용한 발자취'라고 표현했다. 신앙이 없어도, 특별한 목적이 없어도, 그냥 이 언덕에 오르는 것 자체가 이미 무언가를 향한 걸음이 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흐린 날의 동명동 성당도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바다가 회색빛으로 가라앉고 하늘과 수평선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날, 흰 성당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도드라진다. 빗소리가 돌계단을 두드리고 마당의 빗물이 처마에서 줄기를 이루는 날, 이 성당은 더 오래되고 더 깊은 표정을 짓는다. 그런 날 성당 앞 처마 아래 잠시 비를 피하며 서 있으면, 전쟁 중에 이 건물 안으로 피신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어렴풋이 닿아오는 것 같기도 하다. 비를 피할 수 있다는 것, 따뜻한 것을 나눠주는 손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인지를.

동명동 성당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골목 안 작은 가게들이 눈에 들어온다. 성당 방문을 마치고 걸어 내려오는 그 골목의 온도는 언덕 위와 또 다르다. 바람이 덜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더 진하다. 어딘가에서 빵 굽는 냄새가 날 수도 있고, 고소한 무언가가 코끝을 스칠 수도 있다. 속초라는 도시는 항구와 산과 호수와 성당이 모두 걸어서 닿는 거리에 있는 드문 도시다. 동명동 성당은 그 모든 것의 중심 어딘가에, 조용히 높은 자리에서 오래 서 있다.

당신이 어떤 마음으로 이 계단을 오르든, 이 성당은 그 마음을 묻지 않고 그냥 바다를 보여준다.
📍 길찾기오늘속초 이야기 더 보기 →지금떠나 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