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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목포시 · 고하도선착장 · 관광지

⚓ 배가 떠난 자리에 바람만 남아 있었다

고하도선착장

목포대교를 건너는 동안, 차창 너머로 바다가 낮고 넓게 펼쳐진다. 유달산이 섬 하나를 등 뒤에 거느리듯 서 있고, 그 아래 고하도는 다리가 생기기 전까지 배로만 닿을 수 있었던 섬이었다. 선착장에 내려서면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냄새다. 짠기와 비릿함이 뒤섞인, 어느 항구에서나 맡을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여기서만 이렇게 낮고 묵직하게 가라앉는 냄새. 2012년 다리가 놓인 이후 여객선은 더 이상 이 선착장을 드나들지 않는다. 그 대신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이 조용히 자리를 채우고, 물결은 여전히 선착장 콘크리트 모서리를 쓸고 지나간다. 당신이 이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시간이 조금 다른 속도로 흐르기 시작한다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배가 떠나고 남겨진 자리, 선착장 끝에 서서

선착장의 끝에 서면 발아래 물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썰물 때는 검푸른 바닥이 드러나고, 밀물 때는 콘크리트 경계까지 물이 차올라 발끝이 아찔하게 젖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때 이곳에서는 목포 쪽을 바라보며 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장바구니를 든 사람, 아이의 손을 잡은 사람, 혼자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 연기를 내뿜던 사람. 지금은 그 모든 기다림의 자리에 낚싯대 몇 개가 조용히 꽂혀 있고, 줄이 물속으로 가늘게 드리워져 있다.

여객선이 사라진 선착장은 쓸쓸하지만, 그 쓸쓸함이 꼭 슬픔은 아니다. 오히려 조용해진 덕분에 이곳의 진짜 결이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유달산의 능선이 물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멀리 목포 시내의 윤곽이 안개처럼 희미하게 떠 있는 오전의 고하도 선착장은, 말하자면 세상이 아직 완전히 깨어나기 전의 얼굴을 하고 있다. 낚싯줄이 물살에 살짝 흔들리고, 갈매기 한 마리가 포물선을 그리며 수면 위를 스치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당신이 선착장 끝에 오래 서 있다 보면, 이 고요가 단순한 정적이 아니라 무언가를 기다리는 상태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배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평선 쪽을 자꾸 바라보게 되는 것, 그것이 이 선착장이 당신에게 건네는 첫 번째 감각이다. 오래된 장소는 종종 그런 방식으로 사람을 붙잡아 둔다. 기억도 없는 무언가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돌비석 하나가 오래된 씨앗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선착장 가까이에 작고 단정한 비석이 하나 서 있다. '조선육지면발상지비'라고 새겨진 그 돌 앞에서 잠깐 멈추게 되는 건, 비석의 크기가 기대보다 소박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새겨진 이름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생각보다 멀리까지 뻗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목화. 남미가 원산지인 그 식물이 이 섬에서 처음으로 한반도 땅에 뿌리를 내렸다는 것, 그 씨앗이 육지면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출발점이 바로 이 고하도의 흙이었다는 것. 바닷바람이 세고 햇볕이 따뜻한 이 섬의 조건이 목화에게는 꼭 맞았던 모양이다.

비석 앞에 서서 섬 안쪽을 바라보면, 지금은 곰솔숲이 울창하게 자리를 채우고 있다. 오래된 소나무들이 바람에 낮게 울고, 솔향이 짠 바람과 섞여 코끝에 닿는다. 목화밭이 있던 자리에 솔숲이 들어선 것인지, 혹은 처음부터 이 두 풍경이 섬의 서로 다른 자리에 공존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섬에는 그 모든 시간의 켜가 쌓여 있다. 선착장 근처에 조성된 '바닷가 하얀목화밭'이라는 이름의 공간도 그 역사의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목화꽃의 하얀 솜털이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상상하며 걷다 보면, 이 섬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다른 얼굴을 해왔는지 어렴풋이 그려진다.

그리고 선착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이충무공 수군 통제영 터가 있다. 명량대첩의 승리 이후, 이순신 장군이 이 섬에 수군 사령부를 두고 전열을 가다듬었다는 기록. 목화 씨앗이 처음 뿌리를 내린 곳이기도 하고, 수군이 다음 싸움을 준비하며 바다를 바라보던 곳이기도 한 이 섬은, 그러니까 여러 겹의 시간이 같은 땅 위에 포개진 장소다. 관광지라는 말이 닿기 전에, 이곳은 먼저 역사가 숨을 고르던 자리였다.

해안 데크길 위에서, 빛이 기울기 시작하는 시간

오후 늦게 해안 데크길에 오르면 빛의 각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오전의 수직에 가깝던 햇빛이 서쪽으로 기울면서 바다 위에 긴 반짝임을 깔아놓고, 그 위로 유달산의 실루엣이 점점 짙어진다. 데크 위를 걷는 발소리가 나무판 사이로 낮게 울리고, 난간에 손을 얹으면 햇볕에 달궈진 나무의 온기가 손바닥으로 전해진다. 바다 쪽을 향해 서면 바람이 정면으로 얼굴에 닿는데, 그 바람이 봄이면 약간의 꽃가루 냄새를 품고, 여름이면 뜨거운 습기를 머금고, 가을이면 건조하고 서늘하게 피부를 스친다.

용머리 해상 데크에서 바라보는 유달산은 선착장에서 바라볼 때와 또 다른 각도를 보여준다.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낮게 뻗은 데크에서 올려다보면, 유달산의 바위 능선이 생각보다 가파르고 날카롭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저 아래 선착장이 보이고, 그 너머로 목포 시내가 낮은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다. 케이블카가 천천히 하늘을 가로지르는 광경이 가끔 시야에 들어오는데, 그 움직임이 너무 느려서 처음에는 정지해 있는 것인지 움직이는 것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다.

빛이 완전히 기울어 수평선 아래로 내려가기 직전의 시간, 데크 위에 서서 당신이 느끼는 것은 아마도 이런 종류의 감각일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고, 선착장도 보았고, 비석도 읽었고, 솔숲 사이도 걸었는데, 지금 이 순간이 오늘 하루 중 가장 고요하다는 것. 조명이 켜지기 시작한 전망대 쪽에서 빛이 번지고, 바다 위에는 어둠이 먼저 내려앉기 시작하고, 그 경계에서 당신은 잠깐 시간의 두께를 실감한다. 오래된 선착장, 씨앗의 기억, 장군이 바다를 바라보던 자리, 그리고 지금 당신이 서 있는 이 데크. 같은 섬 위에 쌓인 것들이 저녁빛 속에서 한꺼번에 무게를 가지는 순간이다.

동행과 날씨와 계절이 만들어내는, 이 섬의 다른 얼굴들

혼자 오는 고하도와 여럿이 함께 오는 고하도는 전혀 다른 섬이 된다. 혼자라면 선착장 끝에서 오래 머물 수 있고, 비석 앞에서 천천히 글자를 읽을 수 있고, 데크 난간에 기대어 아무 말 없이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 그 고요가 외로움과 닮아 있으면서도 외로움은 아닌 이상한 충만함을 줄 때, 혼자 여행하는 사람은 이런 장소의 진가를 안다. 반면 친구들과, 혹은 가족과 함께 오면 선착장 끝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거나, 데크 위에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거나, 솔숲 사이 벤치에서 간식을 꺼내 먹는 시간이 생겨난다. 그 소란이 이 섬의 고요를 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의 오래된 결 위에 새 무늬를 하나 더 얹는 것처럼 느껴진다.

날씨가 이 섬을 가장 많이 바꾼다. 맑은 날의 고하도는 선명하고 시원하다. 유달산의 능선이 또렷하고, 바다의 색이 짙은 청록으로 출렁이고, 케이블카 너머로 목포 시내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런데 흐린 날, 혹은 가는 비가 내리는 날의 고하도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진다. 안개가 유달산 중턱에 걸리고, 선착장의 콘크리트가 빗물에 젖어 어두운 회색이 되고, 솔숲에서 빗소리가 낮고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그런 날의 선착장 끝에서는 수평선이 하늘과 바다의 경계 없이 하나의 회색으로 이어지고, 세상이 아주 작고 조용한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그런 날이 이 섬의 진짜 얼굴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계절도 이 섬을 다르게 읽게 만든다. 봄에는 솔숲 아래 풀들이 연하게 돋아나고, 해안 데크 난간 너머로 바다 색이 겨울보다 밝아진다. 여름에는 햇빛이 데크 위에 수직으로 꽂히고 바람이 뜨겁게 불어오지만, 그 더위 속에서도 솔숲 안쪽은 서늘하다. 가을에는 빛이 낮게 깔려 선착장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겨울에는 바람이 가장 세고 바다가 가장 어두운 빛을 띤다. 어느 계절에 오든 이 섬은 당신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당신이 어떤 마음으로 선착장 끝에 서느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배가 더 이상 오지 않는 선착장이지만, 여전히 이곳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배가 떠난 자리에는 바람이 남았고,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당신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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