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떠나·← 오늘경주 돌아가기
경상북도 경주시 · 경주다방 · 맛집

☕ 골목 안쪽, 햇살이 머무는 자리에서

경주다방

경주에는 언제나 시간이 두 겹으로 흐른다. 천 년 전의 것과 오늘의 것이 같은 골목에서 나란히 숨을 쉬는 도시. 황리단길 메인 사거리에서 한 블록 안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간판 글씨도 크고 소란스러운 카페들이 잠시 뒤로 물러서는 자리가 있다. 사정로 57번길, 골목이 살짝 좁아지면서 왼편에 '양지다방'이라는 커다란 글씨가 낡은 듯 정겨운 서체로 걸려 있는 것을 당신은 발견하게 된다. 이름이 먼저 당신을 붙잡는다. 양지, 햇볕이 잘 드는 곳.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이미 어떤 온도가 예감된다. 문을 열기도 전에 발걸음이 조금 느려지는 것은, 아마 그 예감 때문일 것이다.

문을 열면 80년대가 잠깐 기다리고 있다

양지다방의 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당신은 잠시 어디에 발을 딛고 있는지 헷갈리게 된다. 공기의 온도가 다르고, 빛의 결이 다르고, 무엇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전혀 다른 시대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빈티지한 소품들이 낯설지 않게, 그러나 분명하게 80년대와 90년대의 분위기를 만들어 놓은 공간 안에서, 당신은 잠시 멈추게 된다. 누군가의 오래된 집 거실에 불쑥 들어선 것처럼, 혹은 오래전 방학 때 할머니 댁 근처 다방에서 어른들이 차를 마시던 장면을 유리창 너머로 들여다보던 어린 시절처럼.

조명은 은은하고, 가구는 낡음이 흠이 아니라 품격처럼 느껴지는 종류의 것들이다.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소품 하나, 벽에 걸린 액자 하나까지, 이 공간을 꾸민 사람이 단순히 '레트로 분위기'를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어떤 시절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 진심이 공간 전체에 고루 스며 있기 때문에,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따뜻하다. 관광지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관광지 특유의 들뜬 소란이 이 문 안쪽에는 조금 덜 닿는 것 같다는 느낌, 그것이 양지다방의 첫인상이다.

황리단길이 본격적으로 유명해지기 전부터 이 골목 안쪽은 조금 다른 속도로 흘러왔다. TV 프로그램에 소개되고 난 뒤로 문 밖에 줄이 생기는 날도 많아졌지만, 문 안쪽의 공기는 여전히 그 이전 시절의 것을 붙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30분쯤 기다려서 자리에 앉은 당신이 의자에 등을 기대는 순간, 이상하게도 조급함이 가라앉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첨성대 모양의 얼음이 천천히 녹는 동안

메뉴판을 받아 들고 당신은 잠시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이 자리에 앉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마음을 정하고 온다는 것을, 옆 테이블을 슬쩍 바라보면 알 수 있다. 첨성대 라테. 이 집의 대표 메뉴이자, 경주라는 도시와 이 카페를 하나의 문장으로 연결해 주는 음료다. 유리잔 안에 첨성대 모양으로 만들어진 아이스 큐브가 담겨 나오고, 그 위로 달콤한 연유가 천천히 흘러내린다. 처음 잔을 받아 드는 순간, 당신은 그것을 마시기 전에 한참 바라보게 된다.

첨성대 모양의 얼음은 정교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 대략의 형태, 층층이 쌓인 돌탑 같은 실루엣이 유리잔 안에서 연유를 머금고 서 있는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다정하게 느껴진다. 경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가 이렇게 손바닥만 한 얼음으로 재현되어 당신의 오후 한 잔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 어딘가 귀엽고 또 어딘가 뭉클하다. 얼음이 천천히 녹으면서 연유가 우유와 섞이는 동안, 잔 안의 빛깔이 조금씩 달라진다. 그것을 숟가락으로 젓기 전에 잠깐 그 변화를 지켜보는 것, 그것이 이 음료를 제대로 마시는 방법인 것 같다.

인절미 와플도 빼놓기 어렵다. 바삭한 와플 위에 인절미 특유의 쫀득하고 구수한 결이 얹혀 있는 조합은, 서양의 것과 한국의 것이 경주라는 도시에서 만나 이상하지 않게 어울리는 것과 닮아 있다. 유자에이드는 진한 유자청의 향이 목구멍보다 코에 먼저 닿는다. 달지 않고 향이 선명해서, 기름진 것을 먹은 뒤 입안을 정리하듯 마시기에 좋다. 크림말차라테는 부드러운 크림이 말차의 쓴맛을 감싸 안는 방식으로 균형을 잡는다. 딸기 수플레는 포크로 살짝 눌러도 금방 부서질 만큼 폭신하고, 상큼함과 달콤함이 과하지 않게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옆 자리 사람들의 표정에서 먼저 읽게 된다. 이 집의 메뉴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경주와 닮아 있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충돌하지 않고 나란히 앉아 있는 방식으로.

황오동 골목이 이 집을 오래 품어온 방식

양지다방이 자리한 황오동은 황리단길의 번화한 축에서 한 걸음 비켜선 곳이다. 첨성대까지는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거리이고, 경주 교촌 한옥마을과 동궁과 월지, 팔우정 해장국거리도 멀지 않다. 경주 IC에서도 가깝기 때문에, 경주에 막 도착한 사람이 짐을 풀기도 전에 들르거나, 하루를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앉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그 사이 어디쯤에, 이 골목 안쪽 다방이 조용히 놓여 있다.

황리단길이 유명해지면서 이 골목에도 새로운 가게들이 하나둘 생겨났지만, 양지다방은 그 흐름 속에서도 자신의 속도를 잃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이후로 외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었고, 주말이면 대기 줄이 생기는 날도 있다. 그러나 이 공간이 가진 레트로한 감성은 그 인기에도 불구하고 흐트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 동네에, 이 골목에 오래전부터 이런 자리가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다방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콘셉트가 아니다. 옛날 다방이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이었던 것처럼, 양지다방도 그런 자리를 꿈꾸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여행자들 사이에서 경주 사람들이 조용히 앉아 차를 마시는 모습, 관광지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지역의 일상과 연결되어 있는 공간. 그것이 이 집을 단순한 '인스타그램 카페'와 다르게 만드는 무언가다. 창밖으로 골목의 풍경이 느리게 흐르고, 안쪽에서는 누군가의 조용한 대화 소리가 낮게 깔린다. 그 소리의 온도가 이상하게 편안하다.

가는 길도, 떠나는 길도 천천히

경주에 온 김에 잠깐 들르는 곳이 아니라, 이곳을 목적지로 삼고 걷는 것을 권하고 싶다. 황리단길 메인 사거리에서 골목 안쪽으로 걸어 들어오는 그 짧은 거리, 관광지의 소음이 조금씩 옅어지고 골목 특유의 조용한 공기가 발끝부터 올라오는 그 감각을 느끼면서 오는 것이 이 집을 제대로 만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첨성대를 먼저 보고 오거나, 동궁과 월지의 물빛을 눈에 담은 뒤 이 골목으로 걸어 들어오면, 의자에 앉는 순간의 안도감이 조금 더 깊어진다.

혼자 오는 것도 좋다. 창가 자리에 앉아 유자에이드 한 잔을 앞에 두고, 방금 걸어온 골목을 가만히 내다보는 오후. 노트를 펼치거나 펼치지 않거나, 어느 쪽이든 이 공간은 당신의 속도를 허락한다. 둘이 와도 좋다. 같은 메뉴를 시켜 나눠 먹거나, 서로 다른 것을 시켜 한 모금씩 건네는 그 사소한 행위가 이 다방의 분위기 안에서는 유독 다정하게 느껴진다. 처음 경주에 오는 사람에게도, 경주를 여러 번 다녀간 사람에게도, 이 집은 각자 다른 이유로 좋은 자리가 되어 줄 것이다.

황남땅콩빵 한 봉지를 손에 들고 이 골목을 걷다가 양지다방 앞에서 잠깐 멈추는 사람들을 당신도 보게 될 것이다. 들어갈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문을 미는 사람들. 그 망설임이 필요 없다는 것을, 문을 열고 나서야 알게 된다. 자리에 앉아 첨성대 모양의 얼음이 천천히 녹는 것을 바라보는 동안, 경주의 오후가 이 유리잔 안에서 조용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양지, 햇볕이 드는 자리. 이름처럼 따뜻한 곳이 있다는 것을, 경주의 골목은 알고 있었다.
📍 길찾기오늘경주 이야기 더 보기 →지금떠나 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