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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가세오름 · 관광지

✂️ 가위처럼 벌어진 두 봉우리 사이에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가세오름

제주의 오름들은 저마다 이름을 가지고 있고, 그 이름 안에는 언제나 오래된 눈길이 하나씩 숨어 있다. 가세오름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잠시 그 소리를 입안에서 굴려보았다. 가세. 제주 방언으로 가위를 뜻하는 말. 누군가 이 오름을 처음 발견했을 때, 두 갈래로 갈라진 봉우리를 보며 그것이 가위처럼 보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계절에, 어떤 빛 아래서 이 산을 올려다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이름 하나가 수백 년을 건너 지금 이곳까지 닿아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표선면 토산리, 제주 동쪽 어딘가에 조용히 서 있는 이 오름은 높이 이백 미터 남짓의 작은 산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의 밀도는 결코 가볍지 않다.

처음 들어서는 길, 덤불이 먼저 말을 건다

오름 입구에 다가서면 안내 표지판 하나가 먼저 당신을 맞는다. 반갑다는 듯 서 있는 그 표지판이 없었다면, 이 오름의 들머리를 찾는 일은 꽤나 막막했을 것이다. 탐방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초행길에는 방향을 잃기 쉽다는 말을 미리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들어서고 나면 그 복잡함이 오히려 이 오름의 성격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한눈에 보이지 않는 길, 덤불 사이로 가늘게 이어지는 흙길, 발밑에서 부스럭거리는 낙엽 소리. 이 오름은 당신에게 한 번에 자신을 보여주지 않는다.

가시덤불이 길 양옆으로 빽빽하게 자라 있어, 짧은 옷차림으로 왔다면 팔뚝과 종아리에 가느다란 상처가 남기 쉽다. 긴 바지를 챙겨 입고 온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덤불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등허리를 쓸고 지나간다. 제주의 바람은 언제나 이렇게 불쑥, 예고 없이 찾아온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 바람의 온도가 피부에 닿는 순간, 이 길이 단순한 등산로가 아니라 어딘가로 들어가는 통로처럼 느껴진다. 덤불 너머에는 염통오름, 족은염통, 달모루, 진동산, 숨골왓이라는 이름의 봉우리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들을 찾아 헤매는 일은 쉽지 않다. 이름은 있지만 길은 없는 봉우리들. 제주의 옛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들이 덤불 속 어딘가에 조용히 묻혀 있다고 생각하면, 이 길을 걷는 일이 단순한 등산이 아니라 일종의 귀 기울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봄이 오면 이 덤불 사이에서 굵은 고사리가 돋아난다고 한다. 실제로 이 오름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고사리를 꺾으러 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른 아침, 아직 이슬이 마르지 않은 덤불 사이를 허리를 굽혀 헤집으며 고사리를 찾는 손길들. 그 손길들이 남긴 흔적이 길 위에 남아 있을 때, 이 오름은 관광지라기보다 생활의 장소처럼 보인다. 누군가의 일상이 스며든 산. 그 일상의 냄새가 흙 냄새와 섞여 올라오는 이 길은, 걸을수록 묘하게 친근하고 묘하게 낯설다.

두 봉우리 사이, 말굽이 품은 고요함

가세오름은 말굽형 오름이다. 말굽형이라는 말은 오름의 분화구가 한쪽으로 열려 있어, 그 형태가 말발굽을 닮았다는 뜻이다. 두 갈래로 갈라진 봉우리가 가위처럼 보인다는 이름의 유래와 겹쳐 생각하면, 이 오름은 어떤 방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진 산이 된다. 멀리서 보면 가위, 가까이서 보면 말굽. 하나의 산이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오름에 오르는 내내 마음 한켠에 머문다.

오르막이 제법 있다. 높이가 이백 미터 남짓이라는 숫자를 보고 가볍게 생각했다면, 오름의 경사가 그 기대를 조용히 수정해줄 것이다. 숨이 약간 차오를 즈음, 발밑의 흙이 달라지기 시작하고, 주변의 나무들이 조금씩 낮아지며 하늘이 넓어진다. 그 순간을 위해 이 오름을 오른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알게 된다. 정상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삼십 분.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 오름은 그 삼십 분을 충분히 채워준다.

북쪽 봉우리에는 이동통신사 기지국이 서 있고, 남쪽 봉우리 정상에는 경방 초소가 있다. 처음에는 그 인공 구조물들이 풍경을 해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초소 위에 올라서는 순간, 그 생각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가시리 일대의 오름 군락이 사방으로 펼쳐지는 그 풍경 앞에서, 초소는 그저 높은 곳에 서기 위한 발판이 된다. 오름 위에서 오름을 바라보는 경험. 제주의 오름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오래도록 서 있었을 그 시간이, 눈앞의 풍경 안에 겹쳐진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는 날이면 초소 위에서 몸을 가누는 일이 쉽지 않지만, 그 바람이 오히려 이 자리를 더 선명하게 기억하게 만든다.

두 봉우리 사이의 안쪽, 말굽이 품은 오목한 공간에 서 있으면 바람이 잠시 멈추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외부의 소리들이 조금 멀어지고, 자신의 숨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는 그 순간. 이 오름이 한적하다는 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말이 이 순간만큼은 선물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와 함께 왔다면 말없이 나란히 서 있게 되는 자리, 혼자 왔다면 그 고요함이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는 자리.

빛이 기울 때 오름은 다른 색을 꺼낸다

오후의 햇살이 기울기 시작하면, 가세오름의 풀밭은 색이 달라진다. 오전의 선명한 초록이 조금 더 깊고 어두운 빛으로 가라앉으면서, 덤불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흙길의 결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 오름은 아침에 오르는 것과 오후에 오르는 것이 꽤 다른 경험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단순히 빛의 차이가 아니라 오름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침의 가세오름이 또렷하고 시원하다면, 오후의 가세오름은 조금 더 깊고 조용하다.

정상의 경방 초소에서 바라보는 가시리 일대의 오름 군락은 시간에 따라 다른 표정을 짓는다. 해가 높을 때는 오름들의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오름들 사이에 그림자가 쌓이면서 그 겹겹한 형태가 더욱 입체적으로 보인다. 멀리 보이는 오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알지 못해도 괜찮다. 이름을 모르는 채로 그 형태들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이 땅이 얼마나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가 느껴진다. 제주의 오름들은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서 있지만, 어딘가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 가세오름의 정상에 서면 그 느낌이 특히 선명하다.

하산하는 길에 빛이 덤불 사이로 비스듬히 들어올 때, 풀잎들이 빛을 받아 잠깐씩 금빛으로 반짝인다. 그 반짝임은 아주 짧고 불규칙해서, 카메라로 담으려 하면 이미 사라지고 없다. 이 오름에는 그런 순간들이 많다. 잡으려 하면 달아나고, 그냥 걷다 보면 불쑥 나타나는 것들. 빛도, 바람도, 덤불 사이로 들리는 새소리도. 그것들을 억지로 붙잡으려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게 두는 연습을, 이 오름은 조용히 가르쳐준다.

계절과 동행이 바꾸어놓는 오름의 얼굴

봄의 가세오름은 고사리의 오름이다. 이른 아침, 아직 서늘한 공기 속에서 덤불 사이를 조심스럽게 헤집는 손들이 있고, 그 손들이 꺾어낸 굵은 고사리가 바구니에 쌓여가는 소리가 있다. 제주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이 오름을 드나들며 봄을 맞이했을 방식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 오름을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살아 있는 장소로 만든다. 봄비가 내린 다음 날이면 흙 냄새와 풀 냄새가 섞여 오름 전체에 퍼지고, 그 냄새를 맡으며 걷는 일은 어떤 설명보다 이 오름의 봄을 잘 전달해준다.

여름의 가세오름은 해충 기피제 없이는 쉽지 않은 오름이 된다. 덤불이 무성해지고 습도가 올라가면서, 진드기와 벌레들이 기승을 부린다. 반려견을 데리고 온 사람들이 이 오름을 쉽게 추천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여름의 가세오름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에는 조금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긴 소매, 긴 바지, 해충 기피제. 그 준비를 갖추고 나면, 여름의 짙은 초록이 덤불 사이로 쏟아지는 풍경이 기꺼이 당신을 맞아준다.

가을과 겨울의 가세오름은 또 다른 오름이다. 잎이 지고 덤불이 얇아지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오름의 뼈대가 드러난다. 염통오름, 족은염통, 달모루, 진동산, 숨골왓이라는 이름의 다섯 봉우리들이 덤불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름내 찾지 못했다면, 잎이 진 계절에 다시 와볼 이유가 생긴다. 겨울 바람이 세게 부는 날, 경방 초소 위에서 가시리 일대를 바라보면, 그 풍경은 봄이나 여름과는 전혀 다른 선명함을 가진다. 군더더기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들. 오름의 형태, 바람의 방향, 멀리 보이는 다른 오름들의 윤곽.

동행이 있을 때와 혼자일 때도 이 오름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혼자라면 탐방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헤맬 수 있다는 말이 경고가 아니라 초대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함께 가는 것을 추천한다는 말이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오름의 복잡한 길은 혼자 걸을 때 불안함을 주기도 하고, 함께 걸을 때 이야깃거리를 주기도 한다. 어느 쪽 코스로 갈 것인지 입구에서 잠깐 고민하는 순간, 덤불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가 다시 찾는 순간, 정상에서 나란히 바람을 맞는 순간. 그 순간들은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

가세오름은 당신에게 자신을 한 번에 보여주지 않는 오름이다. 그래서 한 번 다녀온 사람들은 다른 계절에, 다른 동행과, 다른 마음으로 다시 오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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