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이 먼저 알고 있었다, 유성에는 오래된 온기가 흐른다는 것을
대전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몇 정거장을 지나다 보면, 어느 순간 창밖 풍경이 조금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고층 빌딩의 각진 윤곽이 부드러워지고, 가로수가 더 촘촘해지며, 공기 속에 무언가 미묘하게 다른 것이 섞여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유성온천역 플랫폼에 발을 내딛는 순간, 당신은 그것이 무엇인지 금세 알아차리게 된다. 이 도시 안에 또 다른 도시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도시의 심장부에는 수천 년 전부터 쉬지 않고 솟아오르던 따뜻한 물이 흐른다는 것을. 유성 관광특구는 1994년에 공식적으로 지정되었지만, 이곳이 사람들에게 쉬어가는 자리로 사랑받아 온 역사는 훨씬 더 깊고 오래되었다. 삼국시대부터 이미 병을 치료하고 몸을 달래던 온천이 지금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온도로 솟아오르고 있다는 사실이, 이 거리를 걸을 때 발밑에서 은근하게 전해지는 것만 같다.
역 출구를 나서는 순간, 온기가 먼저 안아주었다

유성온천역 1번 출구를 나서면 당신을 처음 맞이하는 것은 화려한 간판도, 웅장한 건물도 아니다. 봉명동 골목 특유의 낮고 다정한 분위기, 그리고 어딘가에서 은은하게 번져오는 유황 냄새의 흔적이다. 그것은 자극적이지 않고 오히려 오래된 목욕탕의 탈의실 앞에서 맡을 수 있는 그런 냄새, 몸이 이완되기 직전의 예비 신호 같은 냄새다. 온천로를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호텔들의 간판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 사이사이에 대중 온천탕의 작은 입간판들이 수줍게 서 있다. 관광특구 지정 이후 이 거리는 더 많은 시설을 갖추게 되었지만, 그 밑바닥에 흐르는 정서는 여전히 옛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다.
이 거리가 다른 온천 관광지와 조금 다른 것은, 지나치게 들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어디에나 있는 번화가의 소란함 대신, 이곳에는 쉬러 온 사람들 특유의 느슨한 걸음걸이가 있다. 중장년층 부부가 손을 잡고 천천히 걷고 있고, 등산복 차림의 노부부가 어느 식당 앞에서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으며,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이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그 모든 사람들이 어딘가 조금씩 긴장을 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온천이라는 목적지가 사람들의 몸뿐 아니라 표정까지 먼저 부드럽게 만들어놓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성의 온천수는 원탕에서 직접 솟아오르며, 물을 섞거나 온도를 인위적으로 높이는 과정 없이도 질 좋은 온천수를 그대로 제공할 수 있을 만큼 수량이 풍부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이 땅 아래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무언가가 꾸준히 솟아올랐을지 상상하게 된다. 삼국시대의 사람들도 이 물을 마주하며 지금의 당신과 비슷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뜨겁고 부드럽고, 냄새가 나고, 피부에 닿는 순간 무언가 풀리는 것 같은 그 감각 앞에서 말을 잃었을 것이다. 그 물이 지금도 같은 자리에서 솟아오르고 있다는 사실은, 이 거리를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오래된 장소로 만들어주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물속에서 시간이 녹아내리는 방식에 대하여

온천탕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을 당신은 아마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이다. 탈의실 특유의 후끈한 공기, 타일 위에 물기가 얇게 고여 있는 바닥, 그리고 탕 가장자리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의 하얀 결. 유성온천불가마사우나를 비롯한 이곳의 온천 시설들은 유성온천수 100퍼센트를 사용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는데, 실제로 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그 이유를 몸이 먼저 이해한다. 일반 목욕물과는 다른, 부드럽고 미끄러운 감촉이 피부를 감싸며, 온도가 온몸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뜨거운 것이 아니라 따뜻한 것이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몸이 저항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는 온도다.
온천욕은 시간을 다르게 흐르게 한다. 탕 안에 앉아 있으면 바깥세상의 속도가 이곳까지는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다. 수증기 너머로 다른 사람들의 윤곽이 흐릿하게 보이고, 물소리와 낮은 대화 소리가 뒤섞이며,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린다. 그 한숨은 고통의 것이 아니라 해방의 것이다. 오랫동안 어깨 위에 얹어두었던 무언가를 내려놓는 소리, 혹은 몸이 마침내 쉬어도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소리. 이곳이 오래전부터 치유의 장소로 불려온 이유가 그 한숨 속에 담겨 있는 것 같다.
마사지 공간으로 이어지는 복도에는 작은 휴게 공간이 있고, 거기에 앉아 있으면 온천욕을 마친 사람들이 하나씩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피부가 붉게 달아오르고, 머리카락이 살짝 젖어 있으며, 걸음이 조금 느려진 사람들. 그들의 표정에는 공통적으로 무언가가 빠져나간 자리의 여백이 있다. 긴장이 빠져나간 자리, 피로가 빠져나간 자리, 어쩌면 며칠째 마음속에서 맴돌던 걱정이 잠시 빠져나간 자리. 유성의 온천은 그런 여백을 만들어주는 곳이다. 그리고 그 여백은 의외로 아주 조용하고, 아주 따뜻하다.
과학과 축제가 이 거리의 빛을 바꾸는 저녁

유성이 온천만의 도시가 아니라는 것은, 관광특구 경계를 조금만 벗어나도 금세 알 수 있다. 대덕연구단지가 지척에 있고, 엑스포과학공원과 국립중앙과학관이 도보권이나 다름없는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낮 동안 엑스포과학공원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전시관을 돌아다니다가, 저녁이 되면 온천로로 돌아와 온천욕을 즐기고, 밤에는 봉명동 골목의 식당에서 한 상을 받는 하루가 이 동네에서는 자연스럽게 가능하다. 과학과 온천과 음식이 한 관광특구 안에 공존하는 이 조합은 처음에는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만, 실제로 이 거리를 걸어보면 그것이 오히려 유성만의 독특한 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 다섯 시쯤, 온천로의 빛이 달라진다. 낮의 선명함이 사라지고 주황빛이 스며들면서, 호텔 간판들이 하나씩 불을 밝히기 시작한다. 식당들의 환기구에서는 저녁 준비의 냄새가 흘러나오고, 계룡산 산행을 마치고 내려온 등산객들이 온천로로 합류하기 시작한다. 계룡산국립공원이 가까이 있어 산을 오른 뒤 온천욕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코스가 이 지역 여행의 정석처럼 여겨지는데, 그 사람들이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 특유의 상기된 볼과 가벼워진 걸음이 저녁의 온천로를 더욱 활기 있게 만든다.
그리고 축제가 열리는 날이면 이 거리는 또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 유성온천 문화축제가 열리면, 벌구소공원에 플리마켓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좌판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물건을 구경한다. 밤이 깊어지면 드론쇼가 시작되는데, 어두운 하늘 위로 빛의 무리가 모였다가 흩어지며 그리는 형상들이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얼굴을 환하게 물들인다. 온천의 수증기와 드론의 빛이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하는 그 장면은, 이 동네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동시에 품고 있다는 것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순간이기도 하다. 유성관광포럼에서 누군가 말했다고 전해지는 그 문장, "유성의 미래는 결국 사람과 이야기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그 빛 속에서 새삼 실감나게 느껴진다.
계절마다 다른 온도로, 동행마다 다른 이름으로
유성은 어느 계절에 와도 각기 다른 이유로 좋은 곳이다. 봄에는 온천로 가로수가 연두빛으로 물들고, 계룡산 등산로 입구에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는 무렵 이곳을 찾으면 산행의 상쾌함과 온천의 따뜻함이 가장 선명하게 대비되는 감각을 경험할 수 있다. 여름에는 엑스포과학공원의 넓은 부지가 아이들의 함성으로 가득 차고,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과학관과 유원시설 사이를 오가며 하루를 꽉 채운다. 그 더운 날 저녁, 에어컨 바람 대신 온천탕의 수증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조금 역설적인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몸이 오히려 시원해지는 것 같은 기이하고 기분 좋은 경험이 된다.
가을의 유성은 특별히 아름답다. 계룡산의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무렵,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온천로로 흘러들어오고, 거리 전체가 낙엽 냄새와 온천 냄새가 섞인 독특한 향기로 가득 찬다. 이 계절에 이곳을 찾는 중장년층 여행객들의 여유로운 표정은, 단순히 쉬러 온 사람의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알던 장소에 다시 돌아온 사람의 것처럼 보인다. 유성온천이 건강 여행지로 중장년층에게 사랑받아 온 역사가 그 표정 속에 축적되어 있다. 그들에게 이 거리는 처음 오는 곳이 아니라, 몇 번이고 돌아오게 되는 곳인 것이다.
겨울의 유성은 가장 솔직한 얼굴을 보여준다. 관광지 특유의 번화함이 조금 가라앉고, 진짜로 온천이 필요한 사람들, 추위에 굳은 몸을 녹이러 온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 온천탕 밖으로 나오면 차가운 공기가 뺨을 때리고, 젖은 머리카락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며, 그 순간 느끼는 한기와 온기의 극명한 대비가 온천욕의 기쁨을 배로 만든다. 봉명동 골목의 식당에서 뜨거운 국물을 앞에 두고 앉아 있을 때, 창밖으로 보이는 온천로의 가로등 불빛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도 겨울의 유성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동행이 누구냐에 따라서도 이 도시는 전혀 다른 여행지가 된다. 아이와 함께라면 국립중앙과학관과 엑스포과학공원이 하루를 꽉 채워주고, 부모님과 함께라면 온천욕이 여행의 중심이 되며, 혼자라면 벌구소공원 플리마켓 구석에서 아무도 모르게 커피 한 잔을 들고 앉아 있는 시간이 이 도시의 진짜 선물이 된다. 유성은 그런 도시다. 모든 사람에게 다른 이름으로 기억되지만, 떠나고 나면 모두가 비슷한 온도로 그리워하게 되는 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