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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통영시 · 당포항 · 관광지

⚓ 이름을 되찾은 항구, 당포항의 오래된 바다

당포항

통영에는 이름을 잃었다가 다시 찾은 항구가 있다.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바다와 산이 맞닿는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는 당포항이 그곳이다. 한동안 삼덕항이라 불렸던 이 작은 포구는 2013년, 주민들의 오랜 노력 끝에 마침내 제 이름을 되돌려 받았다. 이름 하나를 되찾는 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이, 이 항구가 품고 있는 역사의 무게를 짐작하게 한다. 당포라는 이름 안에는 고려 최영 장군이 쌓은 성벽의 돌 냄새가 있고, 임진왜란의 물살 위에서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물리쳤던 당포 대첩의 함성이 있다. 당신이 이 항구에 처음 발을 디디는 순간, 그 모든 겹들이 발밑에서 조용히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람보다 먼저 도착하는 것, 짠내와 햇살과 역사의 냄새

당포항에 가까워질수록 공기가 달라진다. 창문을 닫고 있어도 느껴지는 그 변화는 냄새라기보다 하나의 밀도 같은 것인데, 짠기가 섞인 습한 바람이 피부에 닿는 순간 비로소 당신은 자신이 바다 곁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산양읍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내려오면 갑자기 시야가 열리면서 항구가 나타난다. 그 첫인상은 소박하다. 크고 화려한 관광지의 분위기가 아니라, 오래 살아온 마을이 바다를 향해 문을 열어둔 것 같은 조용하고 단단한 풍경이다.

선착장에 서면 욕지도로 향하는 여객선이 묶여 있고, 그 옆으로 작은 어선들이 너울에 따라 천천히 흔들린다. 배들이 내는 소리는 삐걱거림과 찰박거림이 섞인 것인데, 그 소리가 생각보다 따뜻하게 들린다. 오래된 나무 부두가 내뿜는 기름 냄새와 갯벌의 비릿함, 그리고 어디선가 날아오는 밥 냄새 같은 것이 뒤섞여 이 항구만의 공기를 만들어낸다. 당포보리밥 같은 현지 밥집에서 흘러나오는 된장 냄새가 그 공기 안에 섞여 있을 때, 이곳이 관광지이기 이전에 사람들이 살고 먹고 일하는 곳이라는 사실이 새삼 마음에 와 닿는다.

그리고 그 모든 감각 아래에, 눈에 보이지 않는 무게가 있다. 당포라는 이름을 되찾기 위해 주민들이 오랜 세월 목소리를 모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이 항구의 공기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이름이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기억의 그릇이라는 것을, 당포항은 그 이름 석 자로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항구에 발을 디디는 순간, 당신은 어쩌면 그 기억의 가장자리에 살며시 발을 들여놓는 셈이다.

성벽 위에서 내려다본 바다, 당포성지가 기억하는 것들

항구에서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 당포성지를 만날 수 있다.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는 그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숨이 차오를수록 아래로 펼쳐지는 바다의 풍경이 커진다. 고려 시대 최영 장군이 축조했다는 이 성지는 오랜 세월의 풍화를 견뎌낸 돌벽이 여전히 남아 있고, 그 돌들이 쌓인 방식에서 시간의 층위가 느껴진다. 이끼가 낀 돌 표면을 손으로 짚어보면 차갑고 거칠며, 그 거침 안에 수백 년의 비와 바람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임진왜란 당시 이 항구는 잠시 왜군에게 점령당했다. 그 사실이 이 성벽 앞에서는 추상적인 역사가 아니라 어떤 구체적인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바다를 바라보며 이 자리에 서 있던 사람들이 어떤 눈빛으로 수평선을 응시했을지, 어떤 마음으로 돌 하나하나를 쌓아 올렸을지를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묵직해진다. 이순신 장군이 당포 대첩에서 왜군을 물리치고 이 땅을 되찾았을 때, 이 성벽은 어떤 소리를 들었을까. 파도 소리와 함성과 울음이 뒤섞인 그 날의 공기가, 지금도 이 돌들 사이에 조금은 남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성지 위에서 내려다보는 당포항은 아주 작고 조용하다. 여객선이 천천히 선착장을 빠져나가는 장면을 위에서 바라보면, 그 배가 만드는 하얀 포말이 물 위에 길게 이어지다가 사라진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린다. 무언가를 향해 떠나는 것과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남는 것, 그 두 가지가 이 작은 항구에서 오랜 세월 함께 존재해왔다는 것이 그 장면 안에 압축되어 있는 것 같았다. 당포성지에서 내려오는 길, 발밑의 흙이 부드럽고 촉촉하게 느껴진다.

오후의 빛이 물 위에서 부서지는 시간

당포항의 오후는 천천히 온다. 한낮의 강한 햇살이 조금씩 기울기 시작하면 바다의 색이 달라진다. 정오의 바다가 날카롭고 투명한 파란색이라면, 오후 세 시를 넘긴 바다는 조금 더 깊고 따뜻한 색을 띤다. 물결이 빛을 받아 잘게 부서지는 모습이 마치 누군가 수면 위에 금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고, 그 빛이 눈에 직접 닿지 않더라도 피부로 느껴질 만큼 따스하다. 선착장 난간에 기대어 그 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시간대의 항구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조금 달라진다. 아침 일찍 욕지도로 떠난 여객선이 돌아오기 시작하고,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섬에서 하루를 보내고 온 사람 특유의 피로와 만족이 뒤섞여 있다.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여행자도 있고, 장을 봐서 돌아오는 섬 주민도 있고, 낚싯대를 들고 느긋하게 걷는 노인도 있다. 그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걷다 보면 당포항이 단순한 관광 포구가 아니라 삶의 통로라는 것이 실감 난다. 욕지도로 가는 배편을 알아보러 이곳에 처음 온 사람도, 이 항구에 수십 년째 드나드는 사람도, 이 선착장 위에서는 같은 바다를 바라본다.

오후의 빛이 완전히 기울기 직전, 항구 전체가 주황빛으로 물드는 짧은 순간이 있다. 그 빛 안에서는 낡은 어선도, 빛바랜 간판도, 그물을 손질하는 노인의 손도 모두 같은 색이 된다. 당포항이 삼덕항이라 불리던 시절에도, 최영 장군이 성을 쌓던 시절에도, 이순신 장군이 이 바다를 되찾던 날에도, 이 항구 위의 노을은 아마 이런 색이었을 것이다. 그 연속성 안에 서 있다는 것이, 여행의 피로를 잊게 만드는 어떤 조용한 위안이 된다.

계절과 동행이 바꾸어놓는 당포항의 얼굴들

당포항은 어떤 계절에 오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곳이 된다. 여름의 당포항은 뜨겁고 생생하다. 욕지도로 향하는 배를 기다리는 여행자들로 선착장이 북적이고, 햇살이 수면에 반사되어 눈이 부실 만큼 밝다. 바다의 냄새가 더 강하게 코를 찌르고, 갈매기 울음소리가 더 날카롭게 들린다. 반면 겨울의 당포항은 고요하고 서늘하다. 관광객이 줄어든 선착장은 어선과 어부들만의 공간이 되고, 찬 바람이 포구를 훑고 지나갈 때 파도 소리가 유독 선명하게 들린다. 그 고요함 속에서 항구는 더 오래되고 더 깊어 보인다.

동행에 따라서도 당포항은 다른 표정을 보인다. 오션뷰 펜션에서 스파를 즐기며 느긋하게 머무는 커플에게 이 항구는 배경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될 것이고,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에게는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장면 하나하나가 신기한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좌대 낚시를 즐기러 온 이들에게 당포항은 이른 새벽부터 살아 있는 곳이고, 멍게비빔밥 한 그릇을 먹으러 혼자 들어선 여행자에게는 조용하고 따뜻한 식탁이 있는 곳이다. 어떤 여행자도 이 항구에서 같은 것을 보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당포항을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비 오는 날의 당포항은 또 다른 이야기다. 빗속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경계가 흐릿해져서 하늘과 물이 하나가 된 것처럼 보인다. 선착장 지붕 아래서 비를 피하며 바다를 바라보는 그 시간은 이상하게 내밀하고 고요하다. 빗소리와 파도 소리가 섞여서 어떤 것이 하늘에서 오고 어떤 것이 바다에서 오는지 구별이 안 될 때, 이 항구가 얼마나 오래 이 자리에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름을 잃었다가 되찾고, 점령당했다가 되찾고, 그 모든 것을 묵묵히 견뎌온 당포항은 어떤 날씨에도, 어떤 계절에도, 어떤 동행과 함께해도 당신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이 바다는 오래되었고, 이 이름은 진짜이며, 이 자리는 여전히 여기 있다고.

이름을 되찾은 항구 앞에서, 당신도 잠시 잊고 있던 무언가의 이름을 떠올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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